딸이 따돌림을 당하고 있을 때 <글쓴이-송윤주>
“A는 제가 원래 같이 다니던 그룹 네 명 중 하나예요. A는 원래 운동을 좋아하지 않아요. 체육 대회 날 A가 오지 않길래, ‘A는 원래 운동 싫어하잖아.’라고 말했는데,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A가 불같이 화를 냈어요. 여러 번 사과했는데도 제 사과가 부족하대요. 그 다음부터 저는 왕따가 됐어요. 친구들은 물론이고, 다른 애들도 저랑 눈도 안 마주치고 말도 걸지 않아요. 저는 철저히 혼자예요. 선생님, 제가 왜 쓸데없이 그런 말을 했을까요? 다 제 잘못 같아요. 학교에 있기가 너무 힘들고 죽고 싶어요.”
아이가 눈물을 닦으며 나간 후,
진료실에 들어온 어머니는 막막한 표정이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춘기 소녀들의 갈등에 부모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춘기 소녀들의 공격은 대부분 친밀한 사회적 관계망 안에서 일어나며,
비신체적이고 비밀스러워서 탐지하기가 어렵습니다.
학교나 가해자를 향해 문제를 제기해 봤자 가해자가 영악해서 문제를 변질시키면,
오히려 딸의 사회성이 문제가 되거나 지나치게 나서는 부모로 몰리기 십상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침묵하고 이 시간을 견디는 게
아이를 위해서도 차라리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딸의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은 더욱 무너집니다.
지칠 때까지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어도,
다음 날이 되면 아이는 또 울면서 한층 더 비참한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때로 부모는 아무 도움도 안 된다며 원망을 쏟아놓기도 하고요.
자녀의 입에서 죽고 싶다는 말을 듣는 것처럼 무서운 일이 또 있을까요.
매일 같이 힘든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부모의 감정 역시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합니다.
끓어오르는 감정의 화살은 가해자를 향했다가, 나를 향했다가, 급기야 아이를 향합니다.
가해자와 방관하는 부모가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다가,
마치 내가 따돌림을 당하는 것처럼 초라하고 우울하고 무력해졌다가,
쓸데없는 말만 안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란 생각에 아이를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감정의 소용돌이에 더 이상 휘말려 있을 자신이 없어서
“사춘기 땐 다 그래. 별일 아니야. ” 라고 부정해 버리기도 하고요.
그런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 같지만,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커다란 역할이요.
따돌림을 겪은 소녀들에게 세월이 흐른뒤 그 때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물으면,
많은 아이들이 ‘가정에서 얻은 위로’라고 답합니다.
차가운 시선 속에서 고달픈 하루를 보내고 돌아왔을 때,
아이를 맞이해주는 가족들의 사랑과 지지는 아이에게 엄청난 힘이 됩니다.
무조건적인 가족들의 응원 속에서 아이는 힘을 충전해서,
기약 없이 이어지는 힘든 날들을 버텨낼 수 있는 것입니다.
따돌림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가장 희망적이었던 순간은
그것을 극복한 친구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였습니다.
따돌림은 아이들의 마음에 분명 깊은 상처를 입히지만,
극복해내는 과정은 아이와 가족을 한층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각자의 생활에 바빴던 가족들은 그 어느 때보다 끈끈하게 하나가 되고,
아이들은 “그룹”이라는 우산 아래 숨어 있을 때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강인하며, 다른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Ref) <소녀들의 심리학> 레이철 시먼즈 지음/ 양철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