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빠서 치료 받을 시간은 없어요 <글쓴이-이정현>

A양은 명문대생이었습니다.
폭식구토 증상이 심해진 나머지 이번 학기를 3주 남기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치료받고 좋아지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을 것 같다고 했지요.

그런데, 이번 여름방학에 인턴쉽이 계획되어 있었다네요.
너무나 하고 싶었던 것이고,
선발되기도 쉽지 않은 곳일뿐더러,
이력서에 써 넣기도 딱 좋은 곳이기에
꼭 해야만 한다네요.

그래서, 여름방학 동안은 바빠서 병원 다니며 치료받을 시간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치료할 수 있는 시간이 2주 정도 남은 셈이었습니다.

바빠서 치료받을 시간이 없다는 “완벽주의+식이장애” 환자분께,
치료를 위해서는 무언가를 미루고 가지 쳐내라고 조언을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저의 치료적 경험에서 비롯된 감각을 발동시켜야 하는 순간입니다.

지금 이대로는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그녀,
앞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친구들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더 힘들다는 그녀,
쉬어가는 자신에게 보내는 주변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는 그녀의 마음을 알기에…
무작정 치료가 우선이라고 주장할 수 없더라구요.

제가 해야할 역할이라면,
좋아지고 싶지만, 바빠서 치료받을 시간은 없다는… 그 마음을 헤아리는 일,
이번에 생각을 바꿀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언제든 내 자리에서 그녀가 치료를 최우선으로 필요로 할때까지 그녀를 기다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