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이장애로부터 벗어나는 회복의 의미

식이장애가 회복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한마디로 설명하기가 참 어렵다. 치료가 되어 가고 있는지를 판단한다는 것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뭐가 좋아져야, 과연 좋아지는 것인지를 구별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왜 회복되어야 하는가?

식이장애는 인생의 거의 모든 영역에 악영향을 끼친다. 감정적으로 문제(우울, 짜증, 심한 감정기복 등)가 생기며, 융통성을 상실한다. 또한 인간관계를 통해 심리적 평안을 느끼는 것에 제한(친구와의 연락을 회피, 가족 모임 거부, 학교 결석 등)을 받으며, 다방면에 걸친 조절감(음식, 돈 쓰기, 술, 감정조절 등)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신체적으로는 전해질의 불균형이나 부정맥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이는 돌연한 심장마비나 신체 주요 장기의 손상을 야기할 수 있다.

 

어떻게 회복이 일어나는가?

회복과정은 행동적 회복 과정과 감정적 회복 과정으로 나눌 수 있다.

행동적 회복의 신호는 식생활의 안정으로 대변된다. 즉, 식이제한, 폭식, 구토의 악순환이 멈추게 된다. 특히 여성의 경우에는 불안정 하거나 사라졌던 생리주기가 정상화 된다.

감정적 회복의 신호는 환자가 자신의 감정이나 문제에 직면하고 이에 대한 해결의지를 보이는 것으로 요약된다. 예컨대 스트레스를 받은 경우 이를 폭식을 통해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의 요인을 분석하고 그 해결책을 찾는 것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병이 시작된 때를 A 라는 시점으로 생각하고, 회복된 때를 B 라는 시점으로 생각해보자. 아쉽게도 A 와 B를 잇는 명쾌한 회복의 과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회복의 과정은, 좋아지다가 주춤하고 때로는 나빠지기도 하면서 다시 좋아지는 과정을 거친다. 치료 초기 폭식과 구토가 줄고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다가도 다시 폭식 구토가 잦아지고 기분이 불안정해지는 시기가 온다. 이 시기에 “뭐야, 치료를 받아도 다시 나빠지잖아. 결국 나을 수 없는 건가봐” 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좋아지다가 나빠질 때, 바로 그때가 회복과정의 중요한 시점이다. 좋아지다가 왜 다시 나빠지는지 원인을 분석하고,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치료자, 부모와 함께 생각해보는 것이 진정한 회복 과정이다. 이를 통해 이후에 문제가 생긴 경우에도 자신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식이장애를 가진 자녀가 좋아지다가 다시 나빠지는 듯 하다고 하여, 부모도 실망하지 말길 바란다. 치료자와 상의하자. 그리고 자녀를 잘 다독여서 슬럼프를 탈출할 용기를 주도록 하자.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만 식이장애의 치료가 이루어진다.

 

회복과정은 여러 가지 변화와 선택으로 구성된다

회복의 과정은 여러 가지 변화와 선택으로 이루어지기에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 문제를 인지적으로 받아들이는 관점의 변화
  • 문제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관점의 변화
  • 음식이나 운동에 있어서의 불균형이, 사실은 삶의 불균형을 의미하고 있었음을 이해
  • 체중 회복을 위한 선택
  • 자신의 감정적 문제를 행동으로 표현하기보다는 말로서 설명할 수 있는 능력
  •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잘 다룰 수 있는 감정적 융통성
  • 회복에 필요한 힘과 용기를 찾아내려는 선택
  • 자신과 타인에 대한 믿음이 자신감으로 연결
  • 느리고 어려운 과정이지만 지속적으로 힘을 낼 수 있는 능력
  • 자신이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지혜

결국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변화와 선택을 통해서 삶을 살아가는 발전적인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치료 과정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식이장애를 가진 자녀가 차근히 밟아갈 수 있도록 정신적 지도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 부모의 임무이기도 하다.

또한 치료에 있어서는 “환자와 치료자 사이의 관계(Relationship)”가 중요하다. 식이장애의 회복은 치료자가 환자의 장점을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이용할 때 가능하다. 치료과정에서 환자는 병과의 관계를 포기하고, 치료자와 파트너 관계를 확고히 하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고한 관계가 자기 자신의 성숙한 자아로 옮겨가 발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치료 과정이다.

그 동안 환자는 내면의 감정을 숨기기에만 급급해 왔고, 이것이 여러 가지 문제 행동으로 표현되어 왔다. 이제 환자는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인식하고 받아들여 감정적으로 성숙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능력을 극대화하게 된다. 이런 치료 과정의 해답은 바로 환자 자신에게 있다. 그리고 부모와 치료자의 도움이 이 과정을 촉진시킬 수 있다.

 

빨리 빨리 회복되면 좋으련만

처음에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좋아지는 것을 환자도 경험하고 부모도 알 수 있다. 그런데 몇 주 지나고 나면 회복의 속도가 지지부진하게 느껴진다. 빨리빨리 좋아졌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보통 좋아지는 시점은 환자에 따라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서 치료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는지 꼬집어서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진공상태에서는 어떠한 회복도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잘 가꾼 정원에서 건강한 꽃이 만개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치료에서 업그레이드되는 순간도 어느 한 순간에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영양을 포함한 식행동에서 차근차근 치료 과정을 거치고, 심리적인 문제도 치료자의 도움을 받아 고민해 보는 치료적 과정을 밟아 나가는 가운데에서야 비로소 한 단계 좋아지는 순간이 찾아올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혹시 치료에 저항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럴 때 어떻게 그런 난관을 극복하는 지에 대한 방법을 알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