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지지 않은 것들 <글쓴이-송윤주>

병원을 찾아오는 많은 분들은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괴로움을 겪고 있습니다.
어린시절 부모님으로부터 끊임없이 비난 받고 형제와 비교 당했던 기억,
어린시절 성폭행을 당하면서 무력하고 수치스러웠던 기억,
외모 때문에 “코끼리”라고 놀림을 당했던 기억,
친구들로부터 외면 당하고 점심시간이면 혼자 밥을 먹어야 했던 기억.

크고 작은 상처의 기억들은 내담자들로 하여금
상처 받은 자신을 평소의 자신으로부터 분리시키도록 합니다.
그 기억이 불러일으키는 공포, 불안, 수치심과 같은 강렬한 감정을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흔히 ‘해리’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고,
‘내면 아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고,
일종의 ‘방어 기제’라고 설명하기도 하는 것이 이러한 현상입니다.

내담자들은 힘든 것을 해결하기 위해 내원했지만
막상 치료자와 관계를 맺게 되면
이해 받지 못할 것이 두렵기 때문에 오히려 먼저 화를 내기도 하고,
‘좋은 환자’ 가 되지 않으면 버림 받을 까봐 불평없이 늘 착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기도 하고,
속마음을 숨기고 쉴 새없이 이야기로 시간을 채우기도 하고,
말하면 혼날 것 같고 어떻게 말해야 할 지 몰라 아무 말도 하지 않기도 합니다.
그 모습은 다양하지만 이들은 모두 하나처럼
자신이 가장 역겹게 느끼고, 버리고 싶고, 증오하는 자신의 모습이 드러날까봐 두려워합니다.
상담실에서조차도 자신이 허용한 극히 일부의 모습만을 통해서 치료자와 소통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담자들이 표현조차 할 수 없는 그 모습에 다가서지 못한다면
치료자와의 관계 역시
그 동안 내담자들이 숨기고 두려워하며 맺어왔던 다른 관계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모습들을
마음껏 이야기하고 보여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당신의 고통에 귀기울이고
당신이 역겨워하고 두려워하는 부분을 그러안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합니다.

당신이 무엇을 말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말하지 못했는지.